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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의 온도

나는 작년 여름방학에 한글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함께 말레이시아 난민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다양한 나라에서 이주해 온 난민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이들 중에 한글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한국에서의 한글 지도의 ...


나는 작년 여름방학에 한글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함께 말레이시아 난민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다양한 나라에서 이주해 온 난민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이들 중에 한글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한국에서의 한글 지도의 경험을 살려 그 아이들을 가르쳐 봤는데 무척 힘들었었다. 그러면서 우리 팀의 선생님들은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한글 지도 자료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들을 위해서는 부모교육, 학생의 의사소통능력 신장, 정서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문화 학생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2022년에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2021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 보고서를 읽어보고 깜짝 놀랐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다문화 학생의 학업 중단의 이유로 ‘그냥 다니기 싫어서’가 54%로 1순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돈을 벌어야’가 10.6%, ‘편·입학이나 유학을 위해’가 9.4%, ‘학교 공부가 어려워’가 7.9%로 나타났다. ‘한국어를 잘 몰라서’ 학업 중단을 한 것은 1.4%에 불과했다. 의사소통이 학업 중단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문화 학생은 왜 ‘그냥’ 학교에 다니기가 싫었을까? 그 원인을 학교 폭력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다문화 학생이 당하는 학교 폭력의 1, 2순위가 ‘집단따돌림(49.1%)’과 ‘언어폭력(43.7%)’으로 나타났다. 특히 다문화 학생을 바라보는 일반 학생들의 ‘말 한마디’가 따돌림과 언어폭력의 시작이었다.

일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한마디는 “그냥 걔는 우리와 달라요.” 였다. 여기서 나는 ‘그냥’, ‘우리’, ‘다르다’가 가진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먼저, ‘그냥’이란 말은 사전적으로는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라는 뜻과 ‘그런 모양으로 줄곧’이라는 뜻이 있다. 즉 학생들은 ‘그냥’이라는 말을 ‘별다른 생각 없이 지금까지 다른 사람이 계속해서 써 왔으니 나도 사용한다’로 생각하고 사용하고 있다. ‘생각 없이 사용한다’니 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서운 말인가? 물론 ‘그냥’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에서 ‘그냥’은 ‘친근함의 표현이고,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렇듯 ‘그냥’이라는 말은 양날의 검과 같다. 비단 ‘그냥’이라는 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말이란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표현하는 것과 듣는 사람이 그 말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말은 그 말을 쓰는 사람의 생각과 의식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은 말하는 이의 입장에서 쓰인 표현이다. 한편 우리 속담에는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크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듣는 이의 입장에서 이해되는 속담이다. 말하는 이는 ‘그냥’이라는 말로 아무 생각 없이 또는 친근함의 표현으로 내뱉었겠지만, 듣는 이는 ‘그냥’ 이상의 고통을 겪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같은 말이라도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듣고 느끼는 온도의 차이가있음을 알고 적절한 낱말을 선택해서 말해야 한다.

두 번째 낱말인 ‘우리’를 살펴보자. “걔는 우리와 달라요.”라는 말을 보면 ‘우리’는 복수이고 다수인 반면에, ‘걔’는 단수이고, 혼자다. 말하는 이는 ‘걔’는 ‘나’와 아니라 ‘우리’와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걔’가 들어올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라는 말은 ‘말하는 이가 자기와 듣는 이, 또는 자기와 듣는 이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로 어떤 대상이 자기와 친밀한 관계’일 때 사용한다. ‘우리’의 반대말은 ‘너희’인데, 너희는 ‘듣는 이가 친구나 아랫사람들일 때, 그 사람들을 가리키는 이인칭 대명사로, 가리키는 대상이 듣는 이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즉 ‘우리’와 ‘너희’의 개념에는 친밀감이라는 공통점이 기저에 깔려 있다. 하지만 ‘걔’는 ‘우리’와 친밀감이 없는 존재로서 대우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따돌림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닐까?

세 번째 낱말인 ‘다르다’를 살펴보자. ‘다르다’의 사전적 의미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로 비교의 대상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앞부분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 말을 한 사람은 ‘걔’가 ‘우리’와 친밀한 존재가 아니므로 ‘다르다’를 인정과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는 ‘다르다’ 가 아닌 ‘틀리다’로 인식하고 사용하는 것 같다. 한때다문화 학생을 교육할 때 많이 사용되는 낱말이 ‘다르다’였다. 무지개 색깔의 다름, 크레파스 색의 다양성 등을 통해 추상적인 다름의 의미부터 인종, 지역, 나라, 언어, 문화, 생활 방식의 다름 등 보편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틀림이 아닌 다름’에 중점을 둔 다문화 교육을 했다. 하지만 최근에 이주 배경 청소년을 위한 다문화 광고가 ‘우리는 모두 우리’라는 제목으로 제작되었다. 광고 내용 중 일부분의 대화글을 보면, “윤수, 다른 점이요?”, “뭐 있냐?”. “글쎄”, “아, 우정이 남다르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친구라는사실”이라고 대화글이 이어진다. 이 광고에서 볼 수있듯이 ‘다르다’를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강조하고 있다. ‘다름’의 인정보다는 ‘우리’의 강조를통해 소속감과 일체감을 불러일으키고자 한 것이다.이처럼 어떤 낱말을 강조하고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전달하고자 하는 방향이나 주제가 달라진다.

말은 쓰는 사람의 의식을 지배하며 소리와 표정을 통해 전달되면 상대방이 듣고 마음으로 느끼는 살아있는 기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말한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기반으로 생각하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말은 말하는 이의 주관적 관념을 표출하는 도구로 종종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말들은 상대방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말에는 씨가 있다고 한다. 말의 씨앗은 내가 뿌린 대로 나고, 자라고, 거두어진다. 즉 내가 한 말은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내가 한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다문화 학생은 우리 사회에서 많은 부분이 자신과 다름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하는 한마디의 말이 상처, 아픔, 슬픔이 되기도 하고, 용기, 희망, 기쁨을 주기도 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통해 모두가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 보자.

오늘, 당신의 말 한마디는 몇 도인가?




이성규

이성규

광주 일신초 수석교사

smille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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