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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여인이 지킨 보물

▲ 내방가사 "조손별서" 재령 이씨 후계파 1966년 ⓒ 한국국학진흥원 한글, 여인이 지킨 보물 성명순(Seong Myungsoon) 곱고 빛나는 옥은 아무리 진흙 속에 굴러도 그 빛을 잃지 않는 법 오랜 멸...

▲ 내방가사 "조손별서" 재령 이씨 후계파 1966년 ⓒ 한국국학진흥원


한글, 여인이 지킨 보물

성명순(Seong Myungsoon)


곱고 빛나는 옥은
아무리 진흙 속에 굴러도
그 빛을 잃지 않는 법
오랜 멸시와 천대를 견디고
이 세상 가장 뚜렷한 글자로 자리매김한 한글
소중히 간직하고 갈고 닦은 고운 마음들이 있었네

대왕이 만드신 글자 가갸거겨 써놓고
낮이면 물 긷고 밤새워 물레를 돌리던 아낙네
등잔불 밑에 바느질할 때 쏟아지는 졸음을 쫓으며
짬짬이 쉽게 익히고 날로 씀에 제 뜻을 글로 펼쳤네
떡살과 시루에도 그 글자 새기어 음식에 정성을 담고
실패와 버선본에도 적어넣어
내 식구 곱고 따뜻하게 입히고 신게 하였네

동짓달 기나긴 밤의 적막함을
장끼전 홍계월전으로 달래고
딸자식에게는 한글로 적은 내훈으로
아녀자의 도리를 가르쳤지
굽이굽이 사연 많던 생애도
우리 글로 적어 한을 풀었네

노류장화라고 얕보지 마소
사람의 가슴 속에 품은 정은 매한가지
천릿길 떠난 임께
묏버들 꺾어 보낸 곡진한 노래 속에 담은 뜻이
양반님네 멸시하던 한글을 지키었네

대왕이 만드신 큰 글자를 지킨 것은
흰 도포 자락이나 휘날리고
한글을 쓰면 오랑캐라고 헛기침이나 해대던
큰 나라 지성으로 섬긴 선비들이 아니라
이 나라의 이름 없는 여인들이었네





성명순

성명순(Seong Myungsoon)

시인 / 세종학교육원 전문위원

chengl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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