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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국어사전의 주춧돌, 『큰사전』 원고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준비하자

2020년 12월 『조선말 큰사전 원고』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정조사를 위해 마주하게 된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이 자료가 거쳐온 지난한 시간을 생각하면 놀랍도록 완전한 모습이었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그 이름과 같이 『조선말 큰 사전...


2020년 12월 『조선말 큰사전 원고』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정조사를 위해 마주하게 된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이 자료가 거쳐온 지난한 시간을 생각하면 놀랍도록 완전한 모습이었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그 이름과 같이 『조선말 큰 사전』의 간행을 위하여 작성된 원본 필사 원고로 ‘조선어학회’가 인쇄된 400자 원고지에 연필과 펜으로 작성되었다. 원고에는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수차례에 걸쳐 교정한 흔적이 있으며 다양한 지질의 종이를 덧대어 내용을 보충하였다. 또한 원고의 상단에는 작업 참여자들이 서명(金敏洙 등)하거나 도장을 날인(權承昱)하여 그 책임을 다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1929년 11월 2일자 『동아일보』에는 ‘한글 창제 사백팔십삼년 긔념일에 깁흔 우리말사뎐 편찬회를 창립’이라는 기사가 보인다. 1929년 10월 31일 각 방면의 인사 108명이 조선교육협회에서 한글날 기념식을 마친 후 ‘조선어사전편찬회’ 발기회를 조직함으로써 사전 편찬이 시작된 것이다. 조선어사전편찬회는 1930년 1월 6일부터 편찬 사무를 시작하고 1933년에는 사전 편찬 작업에 있어 꼭 필요한 「한글맞춤법통일안」도 발표한다. 본격적인 사전 편찬 작업은 조선어학회가 편찬 사업을 이어받은 1936년 4월 1일 이후로 전임 집필위원으로 이극로·이윤재·정인승·한징·이중화 선생 등 5명이 선임되고, 권승욱·권덕규·정태진 선생 등 3명이 증원되었다. 그러나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사전 편찬을 주도하였던 학자들이 검거되어 편찬 작업은 중지되었다. 당시 함경도 함흥재판소는 ‘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독립운동의 형태’로 규정하여 최종 판결하였고 이 과정에서 이윤재·한징 선생은 고문으로 옥사하였다. 투옥된 한글학자들은 광복과 함께 감옥에서 풀려났으나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던 편찬 작업의 중요기록인 원고는 찾지 못하다 1945년 9월 서울역 창고에서 되찾아 편찬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 사전 원고는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홍원에 가져갔던 것을 이른바 피고들이 고등법원에 상고하게 되므로 증거물만이 먼저 서울로 발송되었던 것인데 작년 9월 초순에 경성역 창고에서 이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원고를 쉽사리 찾게 될 때 20여 년의 적공(積功)이 헛되이 돌아가지 않음은 신명(神明)의 도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매 이 원고 상자의 뚜껑을 여는 이의 손을 떨리었다. 원고를 손에 드는 이의 눈에는 눈물이 어리었다”

-김병제, 「조선어사전 편찬경과」, (『자유신문』, 1946. 10. 09)

이를 토대로 1947년과 1949년 제1권과 제2권이 『조선말 큰 사전』이라는 이름으로 간행되고 이후1950년 제3권, 1957년 제4권-제6권이 『큰 사전』이라는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가조직되고 28년 만에 완간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서울역 창고에서 회수한 원고는 52권 26,500 여장의 분량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남아있는 원고는 한글학회,독립기념관에 소장된 것과 개인소장 등 모두 18권에불과하고 수량으로도 4,479장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1947년과 1949년에 간행된 1, 2권에 해당하는 원고는 ‘범례’와 ‘ㄱ 일부’를 제외하고는 남아 있지 않고1957년에 간행된 4-6권에 해당하는 원고도 약 40%에 미치지 못하는 분량이다. 1957년 사전 발간 이후상당량의 원고가 폐기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또한 52권도 사전 간행 이후 현재와 같이 편의에 의해 제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9년부터 1942년까지 일제강점기에 진행된 사전 편찬 작업의 토대 위에 『큰 사전』이 간행된 1957년까지 이루어진 수정 작업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언어사용 양상의 변화와 사전 편찬 원칙의 변화 과정을확인할 수 있는 학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국어사전 중 원고가 남아있는 유일한사례이기도 하다. 또한 수록된 어휘에 있어서도 문헌자료뿐 아니라 전국의 지식인과 학생들의 참여를 통해 방언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이를 분석하는 사전 제작의 역량을 보여준 결과물로 우리나라 국어사전 편찬에 있어 선구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근대사의 측면에서는 식민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민족어를 규범화하고 이를 사전으로 편찬한 유일한 사례로 그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따라서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적인 기록유산으로서의 역사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1995년 유네스코(UNESCO)는 인류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유산으로 훼손되거나 사라질 위험이 있는 기록유산의 보존과 이용을 위하여 기록유산의 목록을 작성하고 효과적인 보존 수단을 강구하기 위해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사업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조선말 큰사전 원고』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여 보편적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그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한글학회에서는 지난 2023년 12월 ‘조선말 큰사전 원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준비위원회’ 를 발족하고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을 넘어 식민지 시대에 한 민족이 말과 글을 지키면서 독립의 염원을 담은 인류의 문화유산임을 알리고 이를 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연구하여 국제적인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많은 관심과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혜은

이혜은

숙명여대 교수,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

helee@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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