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나라 입체도(작가:조산구) 내가 순수 우리말에 눈을 뜨게 된 것은, 그래서 애착을 두게 된 것은 순전히 어머니 영향을 받아서이다. 어머니 그 자체가 우리말의 보고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육십이 넘은 지금까지, 어머니만큼 전통적인 우리...
▲한글나라 입체도(작가:조산구)
내가 순수 우리말에 눈을 뜨게 된 것은, 그래서 애착을 두게 된 것은 순전히 어머니 영향을 받아서이다. 어머니 그 자체가 우리말의 보고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육십이 넘은 지금까지, 어머니만큼 전통적인 우리말을 사용하는 이를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선조들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고유의 순수 우리말을 자유자재로 말씀하셨다. 내가 작가이니 우리말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말할 때마다 우리말 표현(문장)에 수시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이웃들과의 대화에서도 고유의 우리말로만 가지고 말한다. 살아계시면 98세이신데 무학력이다. 대학 나온 할머니들이 어머니의 말을 이해 못 하고 무슨 뜻이냐고 묻는 걸 수없이 보고 살았다. 무학력이신 어머니에게 대학 나온 할머니들이 우리말을 배우고 있다.
그래서 많이 배운 할머니와 젊은 아주머니들이 어머니를 무시 못했다. 오히려 똑똑하다며 어머니 앞에서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말 한마디 한마디에 뜻을 물으며 배우곤 했다. 이웃의 할머니와 젊은 아주머니들에게 어머니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추석과 설날 등 명절이면 젊은 아주머니들은 어머니에게 꼭 선물을 하곤 했다. 고유의 우리말을 안다는 것이 이렇게 훌륭한 대접을 받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한 마디로 어머니는 그들의 스승이었다.
나 역시 어머니와 대화할 때는 무슨 뜻이냐고 수시로 물었다. 소위 책을 읽을 만큼 읽은 작가로서 참으로 부끄러웠다. 더구나 순수 우리말에 무척이나 애착이 있는 사람으로서, 다른 작가들에 비해 좀 더 안다고 자신했으니 말이다. 나는 우리말 사전을 보며 될 수 있으면 순수 우리말을 사용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어머니에게서 깨달은 것은, 내가 아는 우리말은 그저 단어에 불과했다. 문장으로 된 우리 고유의 표현을 몰랐던 것이다. 또한 내가 알고 있는 문장은 20세기~21세기의 현대 문장이었고, 어머니의 말은 문장(표현) 전체가 선조들로부터 내려오는 고유의 우리말이었다. 그러하니 어머니의 말은 내가 처음 듣는 표현일 수밖에 없었다.
“모래가 싹 나네.”, “백발을 보고 웃었더니 백발이 잠깐이야.”, “가년닥친 딸을 두고 가네.”, “삭다례 떡 맛보듯 해.”
어머니의 표현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하나의 단어만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표현) 전체가 이와 같았다. 일상생활에서 들어보지 못한 표현들이 많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안 되겠다 싶어 몇 문장을 노트에 메모한 것을 겨우 찾았다. 이사하느라 뒤죽박죽이 된 책들 속에서 겨우겨우 찾았다. 20대 초반, 문청시절부터 이런 어머니의 말을 많이 채록해 놓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 어머니가 말할 때마다 기록을 해 두었더라면, 또는 녹음을 해 두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선조들로부터 내려오는 고유의 우리말에 대한 아주 훌륭한 자료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더욱 크다. 그랬더라면 작가로서 어머니의 고유 우리말 사전과 같은 책을 집필하여 출간했을 텐데 말이다. 그러면 나도 우리말 보존에 작으나마 공헌을 했을 텐데 말이다.
1990년대 은행에 갔을 때의 일이다. 창구 직원과 무슨 말끝에 나왔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은행 직원의 물음에 “스무하루”라고 말했다. 직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다. 다시 한번 더 “스무하루”라고 말했다. 뜻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21일” 이라고 말하니 그제야 알아들었다. 나는 1990년대까지도 어머니 표현에 익숙해 있어서 종종 고유의 우리말을 사용하곤 했었다. 단어에 불과했지만…….
은행에서의 그 일로 인해 고유의 우리말 사용을 안 하게 되었다. 어차피 못 알아들으니 서로 의사소통이 어렵고, 나는 또 그것을 현대의 말로 다시 말해야 하니 번거롭기도 해서였다. 그러다 보니 우리말을 차츰 잃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더 우리 고유의 말을 들을 수 없으니 더욱 우리말을 잊게 되었다. 고유의 우리말이 사라져감이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의 손자 홍석중의 소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1970년대~1980년대 단편 소설을 거의 모두 읽어 보았고, 21세기의 현대 소설가들의 작품(주로 장편)을 읽어 보아도 어머니가 표현했던 문장들은 찾을 수 없었다. 많은 아쉬움을 갖고 살던 중 홍석중의 소설을 읽으면서 아!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아직도 이북에는 고유의 우리말이 많이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빨리 통일이 되어 고유의 우리말을 찾았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더 되뇌는데, 어머니의 고유 우리말을 채록하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스러움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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