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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사랑의 길』을 읽고

▲ 한재준의 한글놀이. 체험을 위한 설치 작업. 지난해 끄트머리에 ‘외솔길’과 “후대로 이어지는 외솔의 뜻”이라는 제목으로 대담한 적이 있다. 주관하는 쪽에서 대담 구성의 핵심 사항 7가지를 보내 왔는데, 그중 한 꼭지가 “한글사랑, 나라사...

▲ 한재준의 한글놀이. 체험을 위한 설치 작업.

지난해 끄트머리에 ‘외솔길’과 “후대로 이어지는 외솔의 뜻”이라는 제목으로 대담한 적이 있다. 주관하는 쪽에서 대담 구성의 핵심 사항 7가지를 보내 왔는데, 그중 한 꼭지가 “한글사랑, 나라사랑에 대한 생각” 이었다. ‘나라사랑에 대한 생각’을 보고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막막하여 앞부분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양해를 구해 겨우 책임을 면하였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았다. 이러한 마음을 안고 외솔 최현배 선생께서 지으신 『나라사랑의 길(1958, 정음사 550쪽)』을 읽게 되었다.

책은 ‘머리말’을 비롯하여 ‘나라사랑이란 어떠한 것인가?’, ‘민주주의와 나라사랑’, ‘나라사랑의 마음을 기르는 법’, ‘우리나라는 어떠한 나라인가?’, ‘배달겨레는 어떠한 겨레인가?’, ‘나라 흥망의 원리’, ‘거짓과 우악’, ‘재건과 발전’, ‘한배나라의 사랑’의 9개 가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생께서 36년간 나라를 빼앗긴 채 한스런 세월을 살다가 8·15 해방을 맞고, 6·25 사변의 참화를 겪은 뒤 8년에 걸쳐 쓴 글을 1958년에 출간한 것이다. 이 시기는 남의 나라에서 원조를 받으며 한쪽에는 거짓과 폭력, 다른 쪽에는 재건과 발전의 명암이 겹치던 때이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이 책은 현재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 내용을 간추려 보기로 한다.

책의 주요 내용은 ‘나라사랑’의 뜻과 까닭, 그 마음을 기르는 법이라 할 수 있다. 나라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제 나라의 주권, 땅, 사람, 역사, 문화재를 사랑하고 그 영구한 발전을 소원하여 충성스런 섬김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가운데서 사람, 즉 겨레사랑이 그 초점이며, 그 방향은 민주주의, 곧 개인의 평등한 권리, 자유 존중, 인성 신뢰에 바탕을 둔 나라사랑이다. 다음으로, 왜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제대로 된 나라 없이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또 나라사랑의 마음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라사랑은 백성된 사람의 으뜸된 의무로서, 납세·병역·교육(·근로)의 의무를 자발적으로 다하도록 한다.”와 “교육과 생활 속에서 나라사랑의 마음을 기르도록 한다.”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산천과 인정의 미를 돋울 것. 백성들에게 나라의 혜택을 입힐 것. 백성의 생명·재산·자유를 보호·보장할 것. 제 나라 문화를 이해시킬 것. 제 나라의 풍토·경치·고적·풍속·문화에 친숙하게 할 것. 백성으로 하여금 생기를 왕성히 하고 이상을 높이도록 할 것의 6가지를 제시했다.

이에 덧붙여, 나라사랑의 마음을 기르려면 제 나라와 겨레를 제대로 알아야 하며, 나라 흥망의 원리도 잊어서는 아니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자연이 아름답고 자연과 문화가 푸져 사랑할 만한 가치가 차고 넘치며, 나라의 크기와 인구도 남북을 아우르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몸과 얼의 소질이 우수한 배달겨레는 아득한 옛적부터 ‘밝은 누리의 실현’으로써 그 이상을 삼아 왔으며, 겨레 운명 개척의 투쟁사는 꿈속에서도 기억해야 할 생존의 발자취라고 했다. 나라사랑의 마음을 기르는 방법이 책의 곳곳에서 펼쳐지는데, “나라가 흥성하는 원리를 뒤집으면 쇠망하는 원리가 된다.”, “사랑하면 좋아진다.”, “청년이여, 어리석은 이가 되어라. 어리석음은 사람이 지닌 큰 덕의 하나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을 빼놓을 수 없다.

책을 읽은 소회를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나라사랑’의 뜻·까닭·방법뿐만 아니라, 우리 배달겨레를 포함하여 동서고금 여러 나라의 땅, 사람, 역사, 문화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실을 수없이 올바로 깨치게 된다. 이런 깨침의 과정에서 나라사랑의 마음이 절로 우러나는 것을 느낀다. 또한, 몽골의 침략, 그리고 임진왜란과 삼일운동 때 배달겨레가 보여준 항쟁 의지의 검질긴 사례에서 감동을 받고 교훈을 얻는다. 진주성의 항쟁 이야기는 영상을 보듯이 생생해 손에 땀을 쥐게 하며, 일제의 총칼 앞에 맨주먹으로 만세를 부르며 독립과 자주를 선포한 삼일정신의 함성이 메아리치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많은 생각을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겨레의 말과 글은 그 겨레의 생명과 정신이 들어 있는 귀중한 정신문화인즉,이를 사랑하여 기르고 빛내기를 힘쓰며, 이를 소중히하여 갈고 쓰기에 만전을 꾀함은 곧 겨레를 사랑하며, 국민을 사랑하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라는 말씀에 눈과 귀가 번쩍 뜨인다. 나는 과연 말과 글을 탐구하면서 ‘그 일에 온 힘을 쏟았으며, 더욱이, 나라사랑 겨레사랑과 지성으로 연관 지은 적이 있었던가’, ‘이제까지 배우고 익힌 언어, 역사, 지리, 문화 분야에 걸쳐 이 책만큼 가슴에 와 닿아 잔잔한 감동을 체험한 적이 있었던가’하는 물음과,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제라도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게 더없이 고마울 따름이다.

글은 바로 그 사람이라 한다. 외솔 선생의 한평생은 ‘나랑사랑’이며, ‘배달말글 연구와 지킴’이었는데, 이 둘은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선생께서는 “겨레는 나의 어머니이요, 나라는 나의 아버지이다. 겨레가 아니고는, 나는 목숨을 타고 나지 못하였을 것이며, 나라가 아니고는, 타고난 목숨을 누릴 도리가 없었다.”라고 하신다. 이 책은 나라의 소중함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 실천하신 선생의 ‘생활 원리’였다. 그 길을 따라가면 우리도 선생을 닮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머리말’에 “임이여 어디 갔노”라는 연시조 네 마리(수)가 실려 있다. 이 시조와 함께 함흥 옥중 사색의 열매를 가지고 세상에 나오셔서 되찾은 이 땅에 심어 꽃피운 게 『나라사랑의 길』이라 하겠다. “8·15 해방이 사흘만 늦었더라면, 나는 끝없는 망국의 한을 품은 채 왜적의 총알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를 읽으며 목이 멘다.



임지룡

임지룡

경북대학교 석좌명예교수

jrlim@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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