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8월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긴 이후, 우리는 뼈아픈 일제 식민 통치 시기를 겪었다. 일제강점기이다. 특히 1930년대부터는 일제가 우리의 민족 문화 말살을 도모하였는데, 우리 민족의 정통성이 훼손된 치욕의 시기였다. 이즈음에 우리 선...
1910년 8월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긴 이후, 우리는 뼈아픈 일제 식민 통치 시기를 겪었다. 일제강점기이다. 특히 1930년대부터는 일제가 우리의 민족 문화 말살을 도모하였는데, 우리 민족의 정통성이 훼손된 치욕의 시기였다.
이즈음에 우리 선학들은 우리 민족의 고유문화를 지키고자 노력하였다. 조선어학회 잡지로서 『한글』이 창간된 것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무관치 않다. 1935년~1942년의 『한글』은 우리의 말글 문제에 관한 홍보, 보도, 계몽 외에 “각종 어휘를 수집”하여 말글 연구의 초석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몇 해 전에 이른 시기의 『한글』을 보다가 재미있는 어휘 자료를 발견하였다. ‘조선말 지명’이다. 조선말 지명이라는 제목에 실려 있는 자료들은 전래하는 고유의 우리말 땅이름들이다. 이 땅이름 자료들이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조사의 결과는 아닌 듯해도, 일제강점기에 고유의 우리말 땅이름들을 수집하여 정리, 제시하였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말글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선열들의 의지 표명으로, 여기에는 우리 말글에 대한 시대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고, 나아가 우리말 땅이름의 연구에 일조할 수 있는 귀중한 국어 자료라는 점 때문이다. 『한글』에 실려 있는 땅이름 자료는 1937년 6월, 제5권 제6호(통권 46호)를 시작으로, 1946년 4월, 제11권 제1호(통권 94호)까지 32호에 걸쳐 무려 1,783개가 실려 있다. 남북한을 아우르는 적지 않은 양이다. 전래하는 고유의 땅이름들은 주로 ‘마을’을 중심으로 하되, ‘산, 고개, 들, 내’ 등을 망라하고 있다. 땅이름 자료들이 우리 말글을 갈고 닦고 연구하기 위한 어휘 수집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결과들이다.
『한글』의 땅이름 자료들이 소재한 지역은 주로 시/군 단위인데, 남한, 북한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조사된 고유의 땅이름들이다. 이 자료의 수집 광고문에서 땅이름의 근원적인 형태와 의미를 조사자에게 요구하고 있어, 이들은 어휘 자료로서 국어 연구에 요긴하다.
땅이름은 처음 지어질 적에 우리말로 지어졌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기록되어 있는 대부분의 문헌 자료에서는 한자를 빌려 표기한 땅이름만을 보여 준다. 한글로 표기된 땅이름은 20세기에 들어서 처음 보인다. 1910년대 일본인에 의한 『조선지지자료』와 조선총독부에서 조사 정리한 『지지조서』 등이다. 우리말을 지키고 가꾸고자하는 의도와 거리가 먼 것들이다.
그런데 『한글』의 땅이름들은 우리 선열들에 의해 조사된 살아 있는 우리말 자료들이다. 문화유산으로서 우리의 땅이름을 우리의 손으로 조사하여 한글로 표기해 놓은 최초의 땅이름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한글』의 땅이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의미 있는 특징들이 있다. 첫째, 땅이름은 해당 지역의 언어, 즉 그 지역 토박이들의 방언을 반영하여 생성되고 구현된다. 그런 점에서 방언과의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돌앳마(回村), 골마(谷村)(경북-안동)’ 등에서의 ‘마(마을)’는 안동의 방언형이고, ‘여수내(狐川)(전북-익산), 개금말(榗子里)(전북-익산)’의 ‘여수(여우), 개금(개암)’은 익산의 방언, ‘깐치댕이(鵲榮里)(전북-옥구)’의 ‘깐치(까치)’는 옥구의 방언형이다. 둘째, 땅이름은 화석과 같은 고어형을 간직하고 있어, 이전 시기의 국어 연구에 종종 기여한다. 『한글』에서 볼 수 있는 보수적인 고어형으로 ‘ (나무), 넙다(넓다), (드르>)뚜르(들), 실(골짜기)’ 등도 발견된다. 셋째, 땅이름은 역사적인 변이 규칙도 보여 주는데, 『한글』의 땅이름에서 과거에 있었던 ‘ㄱ 탈락 현상’이나, ‘ㄴ-ㅁ>ㄹ-ㅁ’ 과 같은 소리의 변이도 발견된다. ‘(늘개>)늘애(板浦)(전북-익산)’에서 전자를, ‘(안메>)알메(內德)(전북-옥구)’에서 후자를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말에 대응하는 한자 표기 땅이름도 ( )에 넣어 줌으로써, 한글 창제 이전의 차자 표기 전통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면, ‘둔더기’(전북-옥구)를 ‘屯德里’라 표기한 것은 소리를 빌려 표기한 방법이고, ‘선바우’(경북-의성)를 ‘立岩洞’이라 표기한 것은 한자의 뜻을 빌려 표기한 방식 등이다.
어디 이 뿐이랴! 『한글』의 일부 땅이름에는 유래도 담겨 있다. 이를 통해서는 해당 지역민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까지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한글』의 땅이름들은 비록 원문 전사의 어려움으로 인한 표기 혼란의 문제와 땅이름 자료의 불완전한 정보, 그리고 잘못된 표기의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930, 40년대 전래하는 땅이름에 대한 연구의 훌륭한 자료들이다. 이들 자료는 앞으로 땅이름의 생성 및 발달사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로서의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이다. 민족문화를 더욱 강하게 지키기 위해 당시에 시골에 묻혀있는 고유의 우리말 땅이름들을 찾아 정리했다는 것이다. 일찍이 최현배 님은 “노인들의 입에만 남아 있는 땅이름의 수집이 우리말 연구에 긴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역사, 지리, 풍속, 제도 등 문화생활의 연구에 도움될것”이라 하였다. 또한 이희승 님도 땅이름에 대해 ‘고어를 가장 충실히 또 풍부히 우리에게 제공하는 귀한자료’로 평가한 바 있다. 『한글』의 땅이름 자료가 이러한 가치를 갖기에 충분하다.
요즈음엔 북한 지역의 땅이름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남한의 땅이름에 대해서는 현지조사를 통해 확인을 해 봤고, 근래 『한국지명총람』과의 대비를 통해, 그 사이에 달라진 모습도 보았다. 그리하여 땅이름의 근원적인 형태와 의미가 무엇인가도 찾아보았다. 그러나 북한의 땅이름은 확인조사도 어렵고 대비해 볼 자료집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우리말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가 싶어 그저 신기로울 뿐이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