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아버지는 딸의 가장 열렬한 독자다. 지금도 화장실 갈 때면 신문을 들고 가는 아버지는 몇 년 전 신문에서 주식시황표와 방송편성표가 자취를 감췄을 때 크게 실망하셨다. 다들 인터넷으로 보니까 신문에서 사라진 것인데 “(신문으로 봐오던) 나...
70대 아버지는 딸의 가장 열렬한 독자다. 지금도 화장실 갈 때면 신문을 들고 가는 아버지는 몇 년 전 신문에서 주식시황표와 방송편성표가 자취를 감췄을 때 크게 실망하셨다. 다들 인터넷으로 보니까 신문에서 사라진 것인데 “(신문으로 봐오던)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하셨다. 요즘에는 신문을 읽으며 고민이 더 깊어지는 눈치다. “갈수록 네 기사가 무슨 말을하는 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신문에 볼 게 없어.” 딸이 인공지능(AI) 분야의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 보는 영어 단어와 어려운 기술 개념으로 뒤범벅된 기사 앞에 절망감을 느낀 것이다.
지난 1년여 동안 한겨레 ‘빅테크팀’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쉬운 한글로 기사를 쓴다는 것의 어려움을 절감해왔다. 2022년 말 미국의 오픈에이아이(OpenAI)사가 출시한 생성형 인공지능 ‘챗지피티(ChatGPT)’의 등장 이후 빠르게 인공지능 시대가 펼쳐지면서 전문가들의 세계에서만 쓰이던 영어 기술 용어가 빠르게 대중 앞에 나타났다. ‘AI, 딥러닝, GPT, AGI, LLM, 멀티모달...’ 인공지능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가 매일 수도 없이 접하게 되는 단어들이다. 인공지능 패권 경쟁에 뒤쳐지면 안 된다는 국가와 기업의 절박감이 강해질수록 관련 기술을 주도하는 미국 중심의 용어 사용은 상식이 되어갔다.
국내에서 인공지능 분야를 이끌고 있는 이들을 연속 인터뷰하는 기획을 했는데 기사로 작성할 때면 고민에 빠지곤 했다. 한 인터뷰의 경우, 인터뷰를 마쳤을 때 떠오른 제목은 ‘딥러닝으로 끝을 본다’였다. 인터뷰 대상이 대화를 나눈 1시간 30분 동안 '딥러닝'이라는 단어를 36번이나 사용해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목을 쓰려다 멈칫했다. 대중이 보는 신문기사의 첫 단어부터가 ‘딥러닝’이라면 누가 이 기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70대 아버지의 얼굴과 “엄마, 알앤디(R&D)가 뭐예요” 묻던 12살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목을 고쳤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면 대개 사람들이 묻는다. “그럼 딥러닝을 뭐라고 썼어요?” 대체어를 묻는 질문이다. 직역하여 ‘심층학습’과 같은 단어로 바꿀 수 있지만 논의 지점을 여기 두어서는 안 된다. 영어 단어나 성차별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앞에 두고 해당 단어만 바꾸려고 대체어 찾기에만 골몰하면 백전백패다. 어색한 문장, 의미가 딱 통하지 않는 단어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아예 새로운 제목, 구조가 완전히 바뀐 문장이 필요하다.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딱히 바꾸기도 어색하고,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 있는 이들이 사용하는 용어니 당연히 언론도 받아들이고 사용해야 할까? 일단 해당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일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기사 속에 설명을 조금 넣어주는 정도면 충분할까? 이 같은 고민의 답을 찾아갈 때 중요한 지점은 ‘언론의 언어 사용’, 더 나아가 ‘한국 언론의 한국어 사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다들 쓰는 용어인데, 게다가 대체할만한 정확한 한글 표현이 마땅치 않은데 싶을 때 기자들조차 새로운 영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도, 일반 대중도 쓰니까 기자들도 그냥 쓰면 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도, 한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언론은 말을 확산한다. 퍼뜨린다. 아무리 언론의 위상을 깎아 내려 봐도 이 기능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일부에서 쓰던 용어라 해도 언론이 쓰기 시작하면 대중 용어가 되고,곧 그 시대의 한국어가 된다.
인공지능을 미국에서 ‘AI’라 쓴다고 언론이 그대로 받아들여 알파벳 자체로 쓰기 시작하면, 정부도 기관과 정책 이름에 ‘AI’를 넣고, 기업들도 부서와 각종 직책 이름에 ‘AI’를 넣어 마침내 한국 언론이 도저히 ‘AI’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되면 미래 세대도 ‘AI’라는 단어의 틀 안에서 사고하고 고민하며 성장하게 된다. 해당 단어를 그렇게 우리 사회에 견고한 뿌리를 내리게 된다. 이는 2016년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와 겨뤘을 때까지만 해도 일어나지 않았던 상황이다.
이는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젠더데스크’라는 직책을 수행한 적이 있는데 당시 ‘젠더’라는 표현부터 수많은 연구와 논의를 거쳐 탄생한 사회학 분야의 영어 용어들을 어떻게 한국어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유모차’를 ‘유아차’ 로 쓰자는 식으로, 성차별 용어를 단순히 대체하는 수준이 아니라 관련 논의를 확산해나갈 수 있는 철학을 제시하는 용어가 출현할 수는 없을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세계신문협회의 여성 언론인 논의 단위인 ‘위민인뉴스’가 성평등 세계의 기사쓰기에 대한 논의와 언어 사용을 제안하려 <미디어를 위한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을 따로 만든 것도 이런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
각종 전문 분야, 새로운 시대 흐름에서 한국어가 설 자리를 잃게 하지 않으려면 한국어가 더 풍부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절대 의지나 바람만 갖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해당 용어를 주로 사용하는 전문가들, 정책 입안자들, 언론인들, 국어 학자와 국립국어원 등이 책임감을 갖고 개발해 나가야 한다. 이때 단순히 대체어를 찾는 것이 아니라 관련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연구 결과나 철학에 맞닿는 개념 개발을 해나가야 한다. 즉, 새로운 개념을 담은 단어에 ‘맥락’을 불어 넣어야 한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기자가 많은 것으로 안다. 이번에 한글문화연대와 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가 공동으로 새로 만든 상인 ‘쉬운 우리말 기자상’이 이 같은 논의의 물꼬를 트는 시작점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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