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의 언어학자나 저명한 인문학자들이 칭송하는 글자이다. 한글은 창제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20세기를 맞이하였고, 주시경 선생과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가치가 재인식된 이후 진정한 우리의 글자로 자리매김하였다. 온 국...
한글은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의 언어학자나 저명한 인문학자들이 칭송하는 글자이다. 한글은 창제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20세기를 맞이하였고,
주시경 선생과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가치가 재인식된 이후 진정한 우리의 글자로 자리매김하였다.
온 국민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이 글자를 통하여 모든 정보를 균일하고 빠르게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20세기 후반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데에는 한글이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한글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제 앞으로 한글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지를 생각할 때가 된 것 같다.
우선 ‘한글의 우수성’이라는 표현을 조금 더 세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수성’으로 많이 언급되던 부분은 사실 한글이 다른 글자와 구별되는‘특성’인 부분이 대부분이다.
예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한글의 자음자는 발음기관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매우 독창적이다. 그리고 소리가 세어짐에 따라서 획을 더하여 글자를 추가로 만들었다는 것도 획기적인 것이다.
한글의 모음자 역시 인간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하늘(·), 사람(ㅣ), 땅(ㅡ)을 기본자로 하여 이 셋을 조합하여 다른 여러 모음자를 만든다는 놀라운 발상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글이 다른 여러 글자들과 구별되는 한글의 ‘특성’일 뿐 한글의 ‘우수성’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한 흔히들 한글이 창제자와 창제 시기가 밝혀진 유일한 글자라고 말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세상의 많은 글자들이 만든 사람이나 시기가 알려져 있다.
다만 한글은 창제의 원리를 명확하게 밝힌 글자이므로 이것이 한글의 가치를 한껏 높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또한 글자의 기원에 관한 정보일뿐 한글의 ‘우수성’과 직접 관련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한글의 우수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다는 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훈민정음 해례』 서문에 이 글자는 ‘아침밥을 먹기 전에 깨칠 수 있는 글자’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리하였을 것이다.
심지어 요즘에는 한국어와 한글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이 불과 하루 이틀만에 한글을 깨친 경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빨리깨칠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위에서 본 한글의 여러 가지 ‘특성’이 작용한 것이다.
우리는 세종 임금이 '편민(便民)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창제한 한글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한편, 한글은 음소문자(알파벳 문자) 즉 자음과 모음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글자이므로 인간의 언어를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다.
현재 지구상에는 10개 남짓한 음소문자가 있다. 음소문자가 여러 유형의 글자중에서 가장 발달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것은 여러 언어를 잘 표기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통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글의 우수성은 한글을 이용하여 한국어 외에 다른 외국어를 정확하게 적을 수 있는 능력 즉 ‘표음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글자는 로마자이다.
로마자는 현재 지구상에서 글자로 적히는 4,000개 가까운 언어 중에서 무려 1,477개의 언어를 표기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옴니글롯(Omniglot) 누리집에서 인용함).
이 글자가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글자의 획이 단순하고
상호 식별력이 높은 것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글자의 우수성은 바로 이러한 사실 즉 ‘언어를 적을 수 있는 능력’에서 찾을 수 있다.
로마자와 동일한 유형의 음소문자인 한글은 어떠한가? 한글은 한국어만 적는 글자로 사용되고 있다.
흔히 한글은 한국어를 적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음소문자로서의 한글은 로마자와는 다른 특성이 있으며, 이러한 특성을 활용하면 다른 언어를 적을 수 있는 가능성이 배가된다.
한글은 자모 음자를 음절의 초성, 중성, 종성이라는 특정한 위치에 배치하고, 위치별로 여러 조합이 가능한, 이른바‘확장성’이 있는 문자 체계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글은 한국어나 적는 것이지 다른 언어를 적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거나,
한글로 외국어를 적으려는 시도가 국수주의에서 나온 발상 정도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한글 탄생의 위대한 목표를 망각하고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여전히 한글을 너무 낮잡아 보는 것이다.
한글이 우수하다고 믿는다면 음소문자가 할 수 있는 일, 즉 외국어 표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제 전 세계에 한류라는 물결이 퍼져나가고, 많은 외국인들이 한류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어와 한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글은 무문자 언어(글자로 적지 않는 언어)를 적을 수 있고, 절멸 위기에 처한 언어를 적을 수도 있으며,
난문자 언어(글자가 어려워 쓰고 읽기가 힘든 언어)도 쉽게 적을 수 있는 글자이다.
이렇게 한글로 외국어를 적는 것을 ‘한글나눔’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외국인이 한글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적는 이가 많아지고 있으며
앞으로는 자신의 언어도 한글로 적어 보려는 사람이 생겨날 것이다.
20년 후면 한글 창제 600주년이 된다. 우리는 세종 임금이 ‘편민(便民)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창제한 한글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여야 하며, 한글로 세계의 여러 언어를 표기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준비하여 새로운 600년을 맞이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글은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김주원
한글학회 회장
kjw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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