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선생님! 외래어는 발음과 표기가 왜 다르지요?” “뭐가 달라요?” “도서관에서 여행 관련 책을 봤는데, 같은 중국 지명인데 어떤 책은 ‘운남’이라고되어 있고, 어떤 책은 ‘윈난’이라고 쓰여 있고…….”...
수업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선생님! 외래어는 발음과 표기가 왜 다르지요?”
“뭐가 달라요?”
“도서관에서 여행 관련 책을 봤는데, 같은 중국 지명인데 어떤 책은 ‘운남’이라고되어 있고, 어떤 책은 ‘윈난’이라고 쓰여 있고…….”
학생들의 눈빛이 갑자기 진지해진다. 몇몇 학생들은 최근까지 이런 고민했다는 모습이 역력하다.
“맞아요. 영어도 ‘Fighting’을 한글로 쓸 때 ‘파이팅’인가요, 아니면 ‘화이팅’이 맞아요?”
“글쎄? ‘파이팅’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학생 손들어 보세요. 15명이고,
그럼 ‘화이팅’이라고 생각하는 학생 손들어 보세요. 10명인데 그러면 ‘파이팅’이 더 많구나. ‘화이팅’을 선택한 영희가 말해 볼까?”
“영어로 ‘Fighting’이라 쓰니까요. 만약 ‘파이팅’이면 P로 적어야 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영어 /P/는 두 입술에서 나는 ‘순음’이지만 /F/는 윗니와 아랫입술에서 나는 ‘순치음’이라고 배웠거든요.”
학생들은 갑자기 설명하는 친구가 존경스럽고 대견스럽다는 표시로 ‘와-’하고 소리를 낸다.
“오호! 설명에 일리가 있네요. 오래간만에 마음에드는 학생을 만나네요.
하지만 표준어로는 ‘파이팅’이 맞아요.
마음에 드는 학생을 만났으니 기억해 두었다가 태도 점수에 반영해야겠네요?”
학생들은 이번에 그럴 수는 없다고 일제히 ‘에-’하는 소리를 내었다.
“오늘 수업은 외래어 표기법에 관한 문제인데, 외래어가 뭐지요?”
“외국어이지만 우리말처럼 사용하는 낱말들을말해요.”
“예를 들면?”
“뭐, 잉크, 펜, 필름, 샌프란시스코 같은 단어들이요.”
“학생들이 예를 든 단어들은 모두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이지요.
이제는 세계 모든 나라가 서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 외래어를 표기하고 발음할 때는 자기 나라 말소리의 성질에 맞추어 발음하는 것을 표기하고 있어요.
낯선 외국어를 자기 나라 음운체계에 맞추어 정착시켜서 일상적인 언어생활을 불편이 없도록 하려는 의도지요.”
“그런데 편하지 않고 좀 불편해요”
“어떤 면에서 불편하세요?”
“운남이라는 같은 단어인데도 표기가 달라서 다른 지명인 줄 알았거든요.”
“아하! 그건 1986년에 개정 시행한 외래어 표기법은 원음주의 하나로 고정하도록 하는 대원칙을 세웠어요.
다만 필요한 경우 한자를 함께 적도록 허용했어요.
앞에 학생이 질문한 ‘雲南’[운남/윈난]의 표기가 여기에 해당하네요.
예를 더 들어 볼까요? ‘黃河[황허/황하], 臺灣[타이완/대만], 北海道[홋카이도/북해도]’처럼 표기하고 발음해요.
그런데 요즈음은 한자를 표기하지 않아요. 특히 일본어 경우는 원음주의가 잘 지켜져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어요.
나도 일본인 학자인 ‘후꾸사와류기치’가 ‘복택유길(福澤諭吉)’인지 짐작하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저들은 우리나라 고유명사를 모두 자기네 식으로 발음하고 표기해요.
‘三星’을 [싼씽], ‘現代’를 [쌘따이]라 발음하거든요. 우리도 중국·일본의 고유명사는 우리 한자음대로 읽는 것은 어떨까?”
“영어도 발음과 표기가 좀 어려워요?”
“영어 발음과 표기를 볼까요?
사실 ‘파일’도 ‘file/pile’인지 잘 몰라요, 원어인 영어의 표기법이 없다면 영어 사용에 혼란이 올 수밖에 없어요.
이처럼 외국어가 우리말로 들어오면서 본래의 발음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음운적으로 우리말로 되거든요.
외래어를 우리말로 적을 때에는 발음을 기준으로 해요.
문제는 영어의 경우 발음과 철자의 관계가 매우 불규칙해요.
더구나 우리말에 없는 소리는 우리말에서 그와 가장 가까운 소리로 바뀌게 됩니다.
영어의 [r] 소리는 우리말의 ‘ㄹ’음과는 상당히 다르지요.
우리말의 ‘ㄹ’소리는 혀끝을 입천장 뒤에 살짝 붙였다가 떼면서 내는 소리인데, 영어의 [r]은 혀끝을 입천장 쪽으로 살짝 말아 올리면서 내는 소리입니다.
영어에서는 각기 다른 단어인 ‘lace’와 ‘race’가 우리말에서는 똑같이 [레이스]가 되어서 서로 구분이 되지 않지요.”
“선생님! 그러면 영어 소리 /F/에 그런대로 가깝게 우리말로 표기할 방안은 없나요?”
“찾아보면 있어요.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실 때 영어 /F/와 같은 소리를 적을 수 있도록 /ㅸ,ㆄ/ 같은 연서를 만드셨어요.
이렇게 되면 /P/는 /ㅍ/로, /F/는 /ㅸ/로 표기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자! 오늘 수업 마무리할게요. 한글이 전 세계 글쓰기 언어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건 좋은 일입니다.
주변 국가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가 한글 배우기 열풍이지요. 그러나 발음하고 쓰는 방법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우리 한글에 평소 관심을 가지시고 좋은 방법을 생각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오늘 수업 마칠게요.”
신유식
대진대 교양학부 교수
eorhemd@daej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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