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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환산 이윤재>, 우리 말글을 공기처럼 취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반성문

존 러스킨이 말했다. “위대한 민족은 세 가지 자서전을 쓴다. 한 권에서는 역사를, 다른 한 권에서는 예술을, 나머지 한 권에서는 그 민족의 언어에 대해서 쓴다.” 지금 우리말과 글이 훼손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방송이...

존 러스킨이 말했다.
“위대한 민족은 세 가지 자서전을 쓴다. 한 권에서는 역사를, 다른 한 권에서는 예술을, 나머지 한 권에서는 그 민족의 언어에 대해서 쓴다.” 지금 우리말과 글이 훼손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방송이나 인터넷 등 각종 전자 기기를 통해 오가는 문자나 각종 약어, 비속어 등이 별다른 악의 없이 사용된다고는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말과 글이 심하게 훼손되는 경우가 적지않다.
지금으로부터 7~80년 전, 우리 민족은 우리말과 글을 마음 놓고 쓸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강점 초기부터 일본어를 조선인에게 보급하여 일본인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1938년에는 학교에서 조선 어 교과목을 폐지하였으며, 일본어상용정책을 통해 조선 민족을 말살하고자 하였다. 말과 글을 말살해 야만 완전한 민족말살을 이룰 수 있고 영구 식민지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엄혹한 시 절에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이들이 있었다. 바로 조선어학회 33인 회원들 이다. 환산 이윤재 선생은 그 중 한 분이었다.
경남 김해가 배출한, 걸출한 한글학자 환산 이윤재(李允宰·1888∼1943) 선생.
어렸을 때는 마을에서 한문을 익혔으며 김해 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대구 계성학교와 대구 춘잠학 교에서 공부했다. 보통학교 졸업 후에는 김해 합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했고 계성·춘잠학교를 마치 고 마산의 창신학교·의신학교와 평안북도의 영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중국의 문물을 배워 우리 문 화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기 위해 1921~24년에 중국 베이징대학교 사학과에서 수학했다. 1930년대 국 어학계의 중추적 연구단체인 조선어학회의 주요 인물이었던 그는 조선어사전 편찬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맞춤법통일안 제정위원, 표준말 사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어문 정리와 보급에 힘을 기울였고, 1932년에는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을 창간하여 편집을 주관했다. 1937~38년에는 수양동우회 사건 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었다. 국학자인 그는 역사와 언어에 특 히 관심을 가졌으며, 그 무엇보다 한글 보급을 위한 일에 앞장섰다. 환산 이윤재 선생은 침략자들의 언 어말살과 민족말살에 저항하며 한글을 지키려 했다는 이유로 심한 매질과 갖은 고문을 당해 1943년 끝내 감옥에서 비명횡사하였다.
‘한글’은 환산 이윤재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봉사와 협력, 노력, 심지어 누군가의 목숨으로 지켜낸 우리글이다. 공기가 없으면 사람은 살 수가 없다. 그렇지만 대부분 공기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말과 글도 그렇다. 우리 말글이 공기가 되어버린 게 아닌지 걱정되는 요즈음, 이윤재 선생의 삶이 주는 교훈과 메시지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지난 8월 경남김해에서 전문연극인과 시민배우들이 광복절을 맞이하여 대중들에게 이윤재 선생 의 삶과 업적을 알리고, 우리 말글의 소중함을 되새기고자 <환산 이윤재, 부제: 조선인은 조선의 글로> 라는 제목으로 연극을 공연했다. 환산 이윤재 선생이 동상이 서 있는 현재의 김해 나비공원에서 시작 되는 연극 <환산 이윤재>의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연극은 환산 이윤재 선생의 동상이 서 있는 현재의 김해 나비공원에서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한글운동을 하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체포된 후, 연일 계속되는 매질과 갖은 고문으로 죽임 을 당한 환산 이윤재가 자신의 동상을 집삼아 머물고 있고, 이윤재의 비문을 작성한 평생지기 한결 김윤경 은 비석을 집삼아 머물고 있다. 그들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며 나비공원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이 윤재 선생의 아들 이원갑이 한을 품고 죽은 후에 구천을 떠돌고 있어 그 아들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것. 원갑은 아버지의 주검을 보고 얼마나 지독한 고문과 매질을 당했는지 알게 된 후로 가해자인 일제형사 시 바타를 향한 복수심을 키워오다 해방 후에도 사바타가 경찰로 근무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경찰서 로 찾아갔다 살인방화죄까지 뒤집어쓰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그러나 원갑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못하고 복수하기 위해 구천을 떠돌고 있었던것. 이윤재는 자신으로 인해 구천을 떠돌고 있는 아들 원갑을 망자의 세계로 이끌려 하지만 방법을 찾지 못해 살아생전의 모습대로 말 채집을 하거나 마른 비석 을 청소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글날. 극작가 겸 예술 강사 안다미가 연극반 학생들과 함께 한글날 기념 이윤재 추모공연을 하기 위해 나비공원으로 온다. 안다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학생들이 나누는 대화를 숨어서 듣던 이윤재는 거칠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혼종어, 파자, 신조어 등으로 우리말을 훼손시키고 있는 아이들에 분노하여 훈계하러 나 선다. 이윤재의 그런 행위가 학생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을 알기에 한결은 지켜볼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학생들은 분명 보이지 않아야 정상인데 본다. 듣지 못해야 정상인데 듣는다. 뒤늦게 달 려온 안다미 역시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고 듣는다. 안다미는 며칠 전부터 이윤재의 동상 앞에서 이윤재의 일대기 중 특히 이윤재의 조선어학회 활동을 중심으로 쓴 희곡을 들고 읊어대던 인사가 아닌가. 이윤재와 한결은 안다미의 희곡을 빼앗듯이 해 읽어보곤 아들 원갑의 일을 해결할 방법을 발견한다. 희곡 마무리를 어 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는 안다미에게 그 답을 찾게 도와줄 테니 지금까지 써놓은 걸로 한바탕 놀자고. 그들의 실체가 의심스러우나 들어주지 않으면 리허설은 물론 공연도 방해하겠다는 협박에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 응해주기로 한다. 작가로서 작품 완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한 몫 했다. 그리하여 산자와 죽은 자가 함께 하는 낭독공연이 시작되는데....

연극 <환산 이윤재>는 수많은 시련과 희생으로 지켜낸 우리말을 공기처럼 취급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의 반성문이다.





국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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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raxk5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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