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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이 뭐라고!’라고 생각하시나요?

「“아줌마”, “이모님” 아닙니다. 가사관리사(관리사님)로 불러 주세요」. 지난 8월 2일 고용노동부가 낸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보도자료는 가사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명칭과 호칭으로 각각 ‘가사관리사’와 ‘관리사님’이 선정되었음을 전하며 해...

「“아줌마”, “이모님” 아닙니다. 가사관리사(관리사님)로 불러 주세요」. 지난 8월 2일 고용노동부가 낸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보도자료는 가사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명칭과 호칭으로 각각 ‘가사관리사’와 ‘관리사님’이 선정되었음을 전하며 해당 명칭과 호칭을 제안하는 배경과 함께 이 제안을 통해 가사노동자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현재 가사 노동자들을 지칭하는 가장 일반적인 명칭은 ‘가사도우미’다. 이전 시기 ‘식모’, ‘파출부’라는 명칭에서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처음 쓰이게 된 ‘도우미’가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인 ‘가사’에 붙어 ‘가사도우미’라는 새로운 명칭이 만들어져 일반화된 것이다, 하지만 ‘가사도우미’는 직업적인 전문성이나 자부심을 갖게 하는 데는 부족한 명칭이다
한편, 이들은 보도자료의 제목에서 보듯이 흔히 ‘아줌마’, ‘이모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물론, 최근에는 ‘여사님’으로 불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들이 현재 불리고 있는 이러한 호칭은 직업적으로 충분히 존중받는 호칭이라고 하기 어렵다. 게다가 성별과 연령에 대한 직업적 고정관념을 형성할 수 있어 부적절하다.

직업의 명칭도 명칭이지만 한국어 사용자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절실히 필요한 것은 호칭이다.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적절한 호칭을 찾기 어려워 난감했던 경험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다. 편의점에 가서 원하는 물건의 위치를 묻기 위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불러야 할 때,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려고 주문을 받는 사람을 불러야 할 때, 낯선 곳에 가서 길을 묻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야 할 때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잘못 부른 호칭은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지난 3월 초에 있었던 수인분당선 열차 내 흉기 난동 사건이 대표적이다. 흉기를 휘두른 사람은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가해 여성은 열차 안의 중년 여성이 휴대폰 소리를 줄여달라며 자신을 ‘아줌마’라고 부른 것이 난동의 이유라고 했다. 자신은 아줌마가 아닌데 자신을 아줌마라고 부르는 상대 여성의 말에 기분이 나빠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한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자신을 ‘알바’라고 부르며 반말을 하는 손님들의 태도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또, 2021년에는 원주 시청에 걸린 호칭 알림 캠페인 포스터가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전국공무원 노동조합 강원지역본부 원주시지부의 이름으로 걸린 포스터에는 ‘우리는 아가씨가 아닙니다.’로 시작하는 여성 공무원들의 호소가 담겨 있다. ‘아가씨, 언니야’라고 부르는 민원인들의 태도에 ‘XXX 주무관(님)’이라고 불러달라는 내용이었다. 민원인들도 불쾌감을 표현하기는 마찬가지다. 주민센터에서 자신을 ‘아줌마’혹은 ‘아저씨’라고 부르는 공무원들의 태도에 불쾌감을 느꼈다는 게시판의 글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왜 이토록 호칭에 민감할까? 호칭이 뭐라고 칼부림이 나고 포스터가 붙고 세금을 들여 더 나은 호칭을 고민하고 제안하는 것일까? 호칭어는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과의 관계를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는 말이다. 그러니 상대의 호칭어 선택은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예민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존중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 호칭어는 말의 시작부터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어 버린다.

호칭을 들여다보면 참 많은 것이 보인다. 직업마다 호칭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직업은 직업명에 ‘-님’을 붙이면 해당 직업을 가진 사람을 부르는 말이 된다. 검사, 변호사, 판사, 교수, 작가,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교사와 의사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어를 갖는 직업이다. 이들을 부를 때 우리는 직업명에 ‘-님’을 붙이지 않는다. 교사는 ‘선생님’, 의사는 직업명인 ‘의사’에 ‘선생님’을 붙여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업은 직업명이 호칭어로 사용되지 않는다. 즉, 그 사람의 직업을 알아도 그 사람을 부를 적절한 말을 고민해야 한다.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청소노동자, 경비노동자, 택배 노동자를 우리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 고민하는 이유다. 청소노동자는 흔히 ‘아줌마’, 경비노동자와 택배 노동자는 흔히 ‘아저씨’라고 불린다. 딱히 떠오르는 호칭은 없지만 아줌마,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다. ‘아줌마, 아저씨’라는 호칭에는 그들의 직업적 정체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직업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의 직업적 정체성을 지운 채, 그냥 ‘아줌마, 아저씨’로 퉁쳐서 부르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결국, 호칭어의 고민은 내 앞에 존재하는 사람 혹은 그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사회가 진보할수록 우리는 더 세심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호칭이 뭐라고!’가 아니라 호칭의 변화가 말해주는 맥락을 잘 짚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고용노동부의 보도자료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사 노동자의 직업 명칭과 호칭의 새로운 제안은 바로 가사 노동자들의 직업적 전문성을 존중하고 동시에 그 직업을 가진 분들을 직업인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목소리가 전달되고 수용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은 직업에 적절한 명칭과 호칭이 고민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두루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는 호칭은 없을까? 
가장 무난한 호칭은 ‘선생님’이 아닐까 한다. 누구에게든 배울 점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면 상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다. 더 다양한 호칭의 차림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서로를 ‘선생님’으로 부르며 존중의 마음을 표현해 보면 어떨까?




신지영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shinjy@korea.ac.kr



이미지 출처 : (재)진주문화예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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