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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친필을 발견하신 이극로 박사님

이극로 박사님은 1893년 경남 의령에서 5남3녀의 막내로 태어나서 집안에서 농사를 짓다가 집을 나와 마산 창신학교에서 공부를 한 후 만주에서 독립군 양성기관인 동창학교의 교사로 재직하셨다.  그 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러시아로 군사학을 ...

이극로 박사님은 1893년 경남 의령에서 5남3녀의 막내로 태어나서 집안에서 농사를 짓다가 집을 나와 마산 창신학교에서 공부를 한 후 만주에서 독립군 양성기관인 동창학교의 교사로 재직하셨다. 

그 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러시아로 군사학을 공부하러 떠났으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자 독일에 유학하기로 방향을 바꾸고 중국 상해의 동제대학을 거쳐독일 베를린대학에 유학하였다. 

어려운 생활 속에 각고 의 노력으로 5년만인 1927년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셨다. 이 과정에서 주시경 선생의 제자인 김두봉 선생과 인연을 맺어 한글의 언어학적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베를린대학 동양어학과에 독일 최초로 조선어강좌를 개설하여 강사로 활동하였다. 영국과 프랑스에서의 연구생활을 거친 후 미국의 선진 문물을 시찰하고 20년간의 외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한 것이 1929년 1월이었다.

한글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아 음성학적 연구를 처음으로 시도한 이극로 박사님은 민족의 얼을 지키고 되살릴 수 있는 근간으로 한글에 접근했다.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학회에서 한글의 과학화와 대중화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한글과 뗄 수 없는 관계인 세종대왕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우리 역사에도 있음을 식민 치하의 한민족에 다시 인식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 시도로 행하였던 의미있는 일이 세종대왕의 친필을 찾는 것이었다.

세종대왕은 학문이 뛰어나고 명필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그 친필이 당시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수많은 전란에서 모두 분실되어 찾지 못하고 있다가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친필을 찾게 되었다. 전의이씨는 고려 개국시에 태조 왕건을 도운 이도가 시조로서, 하사받은 충청도 전의 지역을 기반으로 번성하였다. 

전의이씨 11세인 이정간은 세종대왕 때 효자로 이름 높은 재상이었는데, 강원도 관찰사로 재임하다가 90세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지극정성으로 노모를 모시었다. 자신도 70세의 고령이었지만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어린 시절의 흉내를 내어 색동옷을 입고 병아리를 희롱하였다고 한다. 이 소문을 들은 세종대왕께서 하늘이 내린 효자라 하며, 궤장(의자와 지팡이)을 하사하시고 친필을 주셨다는 것이다.

이극로 박사님은 전의이씨 28세이다. 전의이씨 문중에 기록된 이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이정간을 모신 충북 청주의 송천서원에 보관되어 있던 『서원행록』에서 이극로 박사님은 “세종대왕世宗大王 수서사手書賜 『가전충효家傳忠孝 세수인경世守仁敬』 팔자八字”란 글귀를 찾아내었다. 한편, 이정간의 후손으로 이정로가 소장한 옛 족보의 첫 장에는 앞의 여덟 글자가 붙여져 400여 년을 전해 내려왔으나 집안에서는 이 글씨가 누구의 글인지 몰랐다. 이극로는 송천서원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 족보의 앞장에 있는 글이 세종대왕 친필임을 증명하였다.

한 민족의 말과 글은 그 민족의 정체성과 앞뒷면의 관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고유의 언어와 문자를 지켜낸 민족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켜내게 되고 설혹 국권을 빼앗긴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회복하는 모습을 우리는 수 없이 보아왔다.

이와 같은 내용은 1937년 12월 23일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소개되어 당시 나라 잃고 핍박받던 당시의 조선인들에게 과거의 자랑스러웠던 역사를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다. 전의이씨의 근거지였던 전의 지역이 현재 세종시의 일부가 된 것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 (*글쓴이 이승철은 이극로 박사님의 큰 형인 이상로의 장손이다.)

▲ 『동아일보』 1937년 12월 23일 기사.


동아일보 1937년 12월 23일 기사

가전충효 세수인경
전의이씨의 구보 가운데서 세종대왕 어필 발견

한글을 창조하신 세종대왕 어진과 어필에 대하여서는 이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학자들의 탐구에도 불구하고 반천년 동안이나 종시 찾지 못하여 크게 유감이던 바 금번 이에 항상 유의하고 있던 조선어학회 이극로씨의 고심으로 고 이정로씨 가족이 보존하고 있는 전의이씨 구보에서 어필을 발견함에 이르렀다. 금번 발견된 어필이란 세종대왕 때의 유명한 노령재상으로 ‘색동저고리를 입고 새를 잡아가지고 놀아 어머니로 하여금 노령을 잊게 하였다’는 효성 지극한 효정공 이정간씨를 뫼신 충북 청주 송천서원에 있는 동 서 원행록에 ‘세종대왕 수서사 (가전충효 세수인경) 팔자’라 기록된 ‘가전충효 세수인경’ (‘집에서는 충효를 전하고 세상에서는 인경을 지켜라’는 뜻) 8자로서 이는 대왕께서 친히 효정공에게 내리신 어필로서 한글 어문창제 491년여에 발견된 유일의 어필이다.




이승철

이승철

경남대 제약공학과 교수

sclee@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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