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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가온길 이야기 ①] 한국이 발전할 수 있었던 원인이 적혀 있는 곳

돌이켜보니, 이제 한반도에 8·15광복(八一五光復)을 기뻐했던 사람들의 물결이 넘쳐흘렀던 것이 거의 백 년 전의 일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 오래전의 시간 속에서 그 기쁨의 순간에도 여전히 애가 타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모진 고문과 투옥에 동...


돌이켜보니, 이제 한반도에 8·15광복(八一五光復)을 기뻐했던 사람들의 물결이 넘쳐흘렀던 것이 거의 백 년 전의 일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 오래전의 시간 속에서 그 기쁨의 순간에도 여전히 애가 타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모진 고문과 투옥에 동료까지 잃고 병자의 몸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던 '조선어학회'의 한글학자들이었을 것이다.

▲ 조선어학회 사건 이후에 모인 인사들 (앞줄 왼쪽부터 김윤경, 정세권, 안재홍, 최현배, 이중화, 장지영, 김양수, 신윤국. 가운데 줄 왼쪽부터 김선기, 백낙준, 장현식, 이병기, 정열모, 방종현, 김법린, 권승욱, 이강래. 뒷줄 왼쪽부터 민영욱, 임혁규, 정인승, 정태진, 이석린. 총 22명), 1949년 6월 12일 촬영 추정, 사진 : ⓒ 권한솔

총을 갖고 싸우거나 멀리 만주나 해외를 누비며 독립운동을 할 수 없는 독립운동. 그 일을 해야만 했던 사람들이 조선 땅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고 사람들 속에서 말을 연구해야 했던 '조선어학회'의 한글학자이었다.
당시 일제의 감금 생활을 버티던 한글학자들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고 그 이틀 후인 8월 17일에야 드디어 감옥 문을 나설 수 있었다. 몸으로 싸우던 독립투사가 아니었지만, 독립투사보다 더 일제의 눈엣가시였던 한글학자들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그들이 만들던 한글 '말모이' 사전을 일본 경찰들이 어찌했는지를 알 수 없어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찾아 다녔다. 사실 성치 않은 몸을 끌고 찾기는 하였겠지만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을까. 일제가 그 한글 원고들을 그냥 불태워 버렸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았을까.

그런데 세종의 한글은 역사 속에서 또다시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조선 땅의 모든 이가 해방의 기쁨에 술렁대던 1945년 한여름, 한글학자들이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과 불편한 몸으로 여기저기 누비기 시작한 지 한 달여쯤인 1945년 9월 8일에 갑자기 '경성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상당량의 원고 뭉치가 발견됐다.'는 연락이 조선어학회로 전달되었다. 환호성이었다.


그렇게 기적처럼 일본 경찰이 압수해 갔던 말모이 원고를 찾게 된 한글학자들은 결국 우여곡절 끝에 '조선말 큰사전' 첫 권을 해방 공간의 한반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1947년 10월 9일의 일이다.
해방 직전까지 일본어 식민교육이 뒤덮었던 상황에서, 한글 기반의 사전은 한글과 한국어 교육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반을 제공했고, 비록 1950년 한반도에 큰 전쟁이 휘몰아쳤지만, 한글과 한국어 교육의 기반은 결국 한국 사회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2023년 8월 17일, 78년 전 8월 17일 그날 그 살아남은 한글학자들이 햇빛을 다시 보고 말모이 원고를 찾기 시작했던 그날을 생각하며 한번 서울 종로구 세종로 한 편으로 가 보길 권한다. 가볍게 산책해도 좋고,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짧은 답사처럼 들려도 좋다.
그곳에는 '한글가온길'이 있고, 우리는 그 길의 한글 공간 중에서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이라는 곳을 만날 수 있다.
반만년 역사의 땅에 이러한 기념탑이나 표석들이 좀 많겠냐만, 광복을 기억하는 시기에 이 빛바랜 철 구조물의 탑은 좀 특별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그 기념탑에 가면 바로 그 조선어학회 사람들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투쟁기가 꼼꼼히 적혀 있기 때문이다.


한글이 공기처럼 존재하는 한국의 일상에서, 세종로에 있는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은 한국인들이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적 기억을 우리에게 공유하고 있다.

'한글가온길' 이야기를 즐겁게 시작하는 참이었는데, 8월 15일을 지나며 그때 그 한글학자들의 모습이 전혀 가볍지 않고 아프게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도 그 의기(義氣)에 삶의 재충전이 된다.
꼭 가보시라. 그리고 이전과 다르게 한번 찬찬히 보시라.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






송두혁

송두혁 / Joachim Song

한글닷컴(Haangle.com)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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