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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아버지 정태진 탄신 120돌을 맞이하여

석인 정태진, 할아버지를 생전에 뵌 적은 없지만 작고하신 아버님을 통해서 한글사랑에 대한 할아버지의 마음과 가르침에 대해서 많이 들었다. 선친께서는 「나의 아버지 석인 정태진」이란 글에서 할아버지의 유학 시절, 일제 강점기의 방언 수집, 함흥 영...

석인 정태진, 할아버지를 생전에 뵌 적은 없지만 작고하신 아버님을 통해서 한글사랑에 대한 할아버지의 마음과 가르침에 대해서 많이 들었다. 선친께서는 「나의 아버지 석인 정태진」이란 글에서 할아버지의 유학 시절, 일제 강점기의 방언 수집, 함흥 영생여고보에서의 한글 사용 교육, 그리고 조선어학회 수난, 6.25 전쟁 시 사전 편찬에 대해서 할아버지로부터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해 놓으셔서 과거의 할아버지이지만 직접 접한 것 같은 생생함이 있다.

할아버지는 ‘석인’이라는 호처럼 우직하고 강직한 성품을 소유하신 듯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교육학으로 대학원 과정을 마치신 후에도 다시 첫 직장인 함흥 영생여고보에서 교편을 잡으신 모습, 전공 과목인 조선어 과목이 폐지되어 대수나 수신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직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한글을 사용하라고 교육하신 모습에서 ‘돌사람’을 볼 수 있다.

집에 있는 사진첩에서 할아버지의 유학 시절 사진을 보았다. 당시 미국 전역의 유학생들이 모여 북미 유학생 총회를 조직하고 활동하였는데 할아버지도 임원으로 유학생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다. 사진(아래)은 동부대학 학생총회로 모인 것이었고, 우리나라 태극기를 크게 걸어놓고 찍은 사진이었다. 할아버지가 귀국할 당시는 일제강점기였는데, 태극기를 걸어두고 찍은 사진을 가져온 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내걸고 나라사랑의 마음을 보여주신 것 아닌가 생각한다.

▲ 1931년 6월 5일, 미국 동부대학 학생총회 임원으로 참가한 유학 시절의 정태진 선생(오른쪽 앞에서 두 번째)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그 무엇보다 가장 떠오르는 것은 우리말에 대한 사랑이다. 조선어를 국어로 쓴 내용의 일화에 대한 함흥 영생여고보 학생의 일기장이 발견되면서, 학생들에게 조선어를 국어로 쓰게 만든 것이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전파한 것이라며 조선어학회 회원인 정태진 할아버지를 첫 지목함으로써 조선어학회 사건이 시작되었다. 

할아버지가 학생들에게 독립사상을 전파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일본어가 국어로 통용되던 시기에 조선어가 국어라고 지칭한 것은 우리말을 지키고자 하는 뜨거운 사랑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말과 글은 한 민족의 피요, 생명이요, 혼이다. … 우리가 뭉치어 우리의 아름다운 말과 글을 피로써 지킬 때가 왔으니 다 함께 일어나 우리의 말 우리의 글을 피로써 지키자.”(「말을 사랑하는 마음」 중에서). 할아버지의 영생여고보 제자 중에 소설가 임옥인 님이 계신데, 그 분의 자서전에는 할아버지께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의 명시를 풍성하게 소개하여 민족의 문화 의식을 심어주셨고, 그 영향으로 임옥인 님은 모국어의 아름다움과 국문학의 정수를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시인이자 국어학자 그리고 한글운동가로서 문화적 민족운동을 하셨다.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는 하나 더 귀한 말씀을 주셨다. “그대여 노력하라, 나도 하리니”라는 소중한 가훈을 남겨주셨다. 할아버지의 이런 가치관이 어려운 환경에서의 유학 생활, 조선어학회의 재건을 위한 노력, 한글운동가로서 큰사전 편찬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선친께서는 ‘석인정태진기념사업회’를 통해 할아버지 관련 서적 11권을 출간하셨다. 대부분의 책들은 한글과 관련된 시, 방언 등 할아버지의 전공 관련 서적인데, 『생활십측』, 『성경교안』 등 종교 관련 서적이 있어 의아하였다. 그런데 최근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출간한 『흔들리지 않는 한글사랑 정태진』에 선친으로부터 듣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할아버지가 미국 유학 중 뉴욕 유니온신학교도 졸업하고, 뉴욕 한인감리교회에서 임시목사로 시무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뉴욕의 빈민굴을 탐방하고 부유한 나라에서도 소외된 이들이 있음을 보고 이를 통해 귀중한 교훈을 얻으셨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믿음의 생활을 통해 어려운 분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있으셨던 것 같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신 후에도 본인의 입신양명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큰사전 편찬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신 할아버지의 활동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고, 1997년 11월의 독립운동가, 1998년 10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여 그 노고가 기려져서 후손으로서 감사할 뿐이다. 한글학회에서도 탄신 80돌, 100돌, 120돌을 기념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주시고, 이번 『한글 새소식』을 석인 정태진 기념호로 꾸며 주심에 감사드린다.





정시영

정시영

정산부인과원장, 한글학회 재단이사 | sycobg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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