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훈민정음을 처음으로 접한 시기는 아마도 중학교 국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선생님께서 외우라고 하시는 ‘나랏말싸미 중국에 달아 …’를 생각 없이 읊었을 뿐이었다. 우리 모두가 그 시절을 그렇게 보냈을 것이다. 1987년 군...
내가 훈민정음을 처음으로 접한 시기는 아마도 중학교 국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선생님께서 외우라고 하시는 ‘나랏말싸미 중국에 달아 …’를 생각 없이 읊었을 뿐이었다. 우리 모두가 그 시절을 그렇게 보냈을 것이다.
1987년 군 복무를 마치고 보은이라는 작은 농촌 마을에 살면서 취미 삼아 조각도를 손에 잡고 글자를 새기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분이 전통 각자의 첫 스승이신 동천 송인선 선생이셨다.
수년에 걸쳐 한글, 한자, 사군자, 문인화, 인물화 등 음각과 양각 등 기법을 익힌 후 1996년 ‘운봉서각원’이라는 이름으로 작업실을 열고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2000년 초 작업실을 찾아주신 국가무형문화재 금속활자 장이신 고 오옥진 선생과의 인연으로 두 번째 스승으로 모시고 목판의 각자 기법과 금속활자 주조기법을 전수 받을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금속활자본인 ‘남명천화상 송 증도가’ 목판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다.
2002년 국가무형문화재 금속활자장 이수자 과정을 마칠 즈음에 국가무형문화재 각자장이신 고 오옥진 선생께서 판각하여 인출한 『훈민정음』 해례본 복사본 한 부를 주시며 기회가 되면 한 번 새겨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것이 『훈민정음』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책판 제작의 경험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훈민정음』을 복각한다는 것이 자신감은 물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 후 10여 년 동안 각 기관의 시연용 책판 및 목판 등을 새기고,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공모전에 제작한목판을 출품하여 여러 차례 입상을 하고,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책판들을 보고 복원하면서 조금이나마 자신감과 의욕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훈민정음』 원전이 궁금하여 문화재청을 통하여 한글학회에서 출간한 영인본(1997)과 문화재청에서 출간한 ‘현상 영인본’(종이가 변색되거나 서체나 선의 변형이 생긴 현존 고서를 그대로 복제한 영인본)을 입수하여 여러 판본들과 비교, 분석해보았다. 그 결과 『훈민정음』 해례본 원전과 근대에 새긴 복각본의 자형(字形)과 획 등에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원전에 가장 근접한 문화재청의 현상 영인본을 저본으로 삼고, 판심 부분이 명확하지 않아 오옥진 선생의 복각본 판심 형태를 인용하여 판하본을 제작하고 2013년 초 판각 작업을 진행하였다.
옛 선인들이 팔만대장경을 한 글자, 한 글자 새기며 판 하나에 담아냈던 그 마음, 그 간절함, 세종대왕의 백성을 향한 그 마음을 나는 『훈민정음』 서문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의 조심스러움과 조금은 늦은 나이에 알게 된 우리 문자의 탄생 역사에 대한 벅차오르는 감동과 감사한 마음으로 한 획, 한 획에 그 뜻과 마음을 담아 내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2014년 7월경 2차 교정을 거쳐 『훈민정음』 해례본 복각이 마무리될 무렵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고자 2014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 출품을 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10개 부문의 본 상에 선정 되고 2차 심사 결과 문화재청장상을 수상하며 목판은 국가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에 귀속되었다.
그것이 본 각수가 새긴 『훈민정음』 해례본 첫 번째 판각이었다. 이듬해 2015년 문화재청과 경상대학교 연구팀에서 정본화 사업을 진행한, 서강대에 소장된 『월인석보』 초간본 권두에 수록되어 있는 『훈민정음』 언해본 15면을 복각,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며 이 또한 협회에 귀속되었다.
그 후 2016년 (사)유교문화보존회에서 『훈민정음』 해례본 복각 사업이 진행되었고 때마침 『훈민정음』 해례본 소장처인 간송미술관에서 소량의 영인본을 출간하였다. 그 본을 모본으로 하여 『훈민정음』 안동본을 판각한 것이 본 각수가 새긴 두 번째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2017년 아쉬운 마음이 있어 『훈민정음』 언해본을 한 번 더 복각을 진행하여 현재 본 각수가 소장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을 모두 두 번씩 복각했지만 가장 큰 아쉬움은 다름 아닌 가장 앞부분의 낙장 필사 부분이었다. 다행히 하늘도 그 마음을 알아준 듯 2017년 12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낙장 복원 및 정본화에 대한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학술 토론회”가 개최되고 문화재청과 한신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주최, 주관하여 어느 정도의 구두점, 오자, 판식 등 기준점이 제시되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2018년 『훈민정음』 해례본 세 번째 판각에 착수하였다.
2면의 낙장 부분의 글자들은 학술 토론회에서 제시된 판식에 따라 남아있는 예의 부분과 해례 부분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집자하여 판하본을 제작하고, 그동안 사용했던 타각(打刻) 기법이 아닌 전통 책판 새김 기법인 인각(印刻) 기법으로 1년여에 걸쳐 판각을 마무리하였다.
이렇게 언해본 2회, 해례본 3회 판각을 하고 세 번째 해례본 책판도 언해본 책판과 함께 본 각수가 소장하고 있다. 이후 본 각수가 칼을 잡고 있는 동안 낙장 없는 온전한 『훈민정음』을 찾는다면 한 번 더 새겨 후세에 전하고 싶은 소망을 담아 두 손 모아 본다.
문화란 화분에 담긴 화초와 같아서 관심과 애정, 보살핌이 없으면 시들어 생명을 잃듯이 눈에 보이는 튼튼한 줄기와 무성한 잎, 아름다운 꽃과 열매의 근원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지탱하고 생명수를 공급해 주는 뿌리가 있음을 한 번 더 생각할 때가 아닌가 한다.
박영덕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28호 각자장 | pyd364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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