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각종 언론매체의 기자들이 누군가와 인터뷰할 때, ‘무슨 이유가 있으실까요?’, ‘하실 말씀 없으실까요?’, ‘그 말이 맞으실까요?’, ‘어떻게 진단하실까요?’ 등의 표현을 마치 습관처럼 쓰고 있다. 필자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뭔가 ...
언제부턴가 각종 언론매체의 기자들이 누군가와 인터뷰할 때, ‘무슨 이유가 있으실까요?’, ‘하실 말씀 없으실까요?’, ‘그 말이 맞으실까요?’, ‘어떻게 진단하실까요?’ 등의 표현을 마치 습관처럼 쓰고 있다.
필자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경우라면‘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그 말이 맞습니까?’, ‘어떻게 진단하십니까?’라고 말해야 바람직한 표현이다. 물론 문법 해석에는 견해차가 있을 수 있지만, 의문을 나타낼 때 쓰는‘~습니까?’, ‘~ㅂ니까?’를 써서 표현하는 것이 전형적이기 때문이다. 또, ‘차선(車線)을 변경하다가 사고가 났다’, ‘시위대가 몇 개 차선을 점거하고 있다.’ 등에서는 차선이 아니라 ‘차로(車路)’라고 해야 옳다. 차선은 차로를 구별하기 위해 그어놓은 선일 뿐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관련 용어도 잘못 쓰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컨대 맹인(또는 장님)은‘시각장애인’, 귀머거리는‘청각장애인’, 벙어리는‘언어장애인’, 정신지체는 ‘지적장애인’, 지체부자유자는 ‘지체장애인’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도 아직도 많은 이들은 물론, 심지어 언론매체까지도 잘못 쓰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언론은 여전히 자폐증(또는 지적장애나 뇌성마비)을 ‘앓고 있다’라고 말하는데, 이건 명백히 틀린 말이다. 장애는 ‘앓고 있는’ 게 아니라 ‘가진’ 것이기 때문에 ‘자폐증을 갖고 있다’라고 해야 옳다.
또한, 장애인을‘장애우(障碍友)’라고 지칭해서도 안 된다.‘장애우’는‘장애를 가진 친구’또는‘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친구’라는 좋은 의미지만, 연령대가 다양한 장애인을‘장애우’라는 호칭으로 아우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런데 아직도‘장애우’라는 표현이 장애인을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장애우’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이미 장애인에 대한 동정을 전제로 하므로 이 용어는 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장애인’에 대한 상대 개념으로 장애가 없는 사람을 가리킬 때는‘비장애인’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그런데도 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을‘정상인(또는 일반인)’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는데, 이 말은 결과적으로 장애인이 비정상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삼가야 한다.
한편, 우리 주변에서는 ‘님’을 너무나도 남용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어사전에서 ‘님’은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즉 ‘씨’보다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님’을 남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어떤 국회의원이 방송에서 ‘극소수의 의원님을 제외하고···’,‘저희 의원님들 책상 위에는···’이라고 말하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해, 이는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다. 어떤 의원이 다른 의원을 지칭할지라도 언론 등에서 국민을 향해 말할 때는 결코‘님’을 붙여서는 안 된다. 즉 ‘님’은 빼고 그냥 ‘의원’이라고 말해야 한다. 국민 앞에서 동료나 선·후배 의원을 의원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들 스스로를 높이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공공언어는 모든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한다. 무엇보다도 언론매체에 종사하는 이들은 언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큰 파급 효과를 생각해 쉬운 우리말과 올바른 표현을 써주기를 간곡히 바라 마지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목사나 신부(神父), 원장이나 관장 등도 마찬가지다. 목사나 신부가 성도(신자)나 대중 앞에서 다른 성직자나 자신들을 일컬어‘목사님’,‘신부님’이라고 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높임의 의미를 더하는 접미사‘님’을 붙여 말하는 게 올바른 언어 예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는‘000 목사(또는 신부)께서는’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
그리고‘~ㄹ게요’는 말하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하겠다고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거나 상대방에게 약속함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따라서‘~할(하실)게요’라는 말로 상대방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할 때 써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할(하실)게요’라고 말하는 것은 어법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병원이나 백화점 등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는 방송 진행자마저도 이렇게 잘못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두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공공언어는 온 국민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각종 언론매체는 대수롭지 않게 영어를 마구 섞어 쓰고 있다. 방송에 출연하는 정치평론가나 국회의원도 그러하다. 어디 그뿐인가.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은 물론,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이따금 영어를 섞어 사용한다. 언론매체나 공직자가 국민을 대상으로 말을 할 때는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데도 말이다.
국립국어원은 공공언어를 쓸 때 외국어는 가능한 지양하고 쉬운 우리말을 쓰도록 권고하고 있다. 물론 외국어를 대체할 수 있는 적절한 우리말이 없을 때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대체할 우리말이 있는데도 영어를 쓰는 것은 국민과의 의사소통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영어 사대주의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공공언어는 모든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한다. 무엇보다도 언론매체에 종사하는 이들은 언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큰 파급 효과를 생각해 쉬운 우리말과 올바른 표현을 써주기를 간곡히 바라 마지않는다.
배연일
전 포항대 사회복지과 교수, 시인 | vision97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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