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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다듬기의 역사와 의미

다음은 국립국어원 누리집 다듬은 말 페이지에 비교적 최근에 등록된 용어들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왼쪽 단어들이 더 편리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른쪽 단어가 더 쉽게 느껴집니다. 마이크로투어리즘 컴...

다음은 국립국어원 누리집 다듬은 말 페이지에 비교적 최근에 등록된 용어들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왼쪽 단어들이 더 편리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른쪽 단어가 더 쉽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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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다듬기에 대한 현대인의 의견은 제각각입니다. 그래도 “롱웨어 포뮬러로 빈틈없이 피팅되는 텍스처의 커버”과 같은 이른바 ‘보그체’ 표현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주스 대신 단물, 아이스크림 대신 얼음보숭이를 사용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말다듬기는 생각보다 다양한 부분에 대한 고려와 균형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말다듬기의 역사는 언제 시작되어서, 어떻게 이루어져 온 것일까요?

기록으로 확인되는 이른 시기의 국어 순화로는 임진왜란 뒤에 선조가 일본말의 사용을 금지한 일을 들 수 있습니다. 선조 26년 10월 2일 실록에는 선조가 “도성의 백성들이 오래 왜적에게 함몰되어 있었으므로 왜어(倭語)에 물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각별히 방(榜)을 내걸어 엄하게 금지하되 혹시라도 왜어를 하는 자가 있으면 각기 동리 안에서 엄하게 규제하여 원수인 오랑캐들의 말이 항간에 섞이지 않게 하라.”고 전교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개화기에도 국어 순화 노력의 흔적이 있습니다. 1896년 『독립신문』에서 문어체 한자어 축출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1910년대에는 주시경 선생에 의해 특히 국어학에 관련되는 학술 용어를 “임(명사), 엇(형용사), 움(동사), 겻(조사), 잇(접속사), 언(관형사), 억(부사), 놀(감탄사)”과 같이 고유어로 바꾸는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해방 이후 국가 차원의 국어 순화 운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우리말 도로찾기” 운동부터입니다. 광복이 이루어진 직후부터 문교부 산하에 설치된 국어 정화 위원회를 중심으로 하여 우리말 도로찾기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나라를 되찾은 기쁨과 흥분 속에서 일본어에서 들어온 말을 없애고 우리말을 쓰고 싶어 하는 민족적 열망으로 이 시기의 우리말 도로찾기 운동은 큰 성과를 내게 됩니다. 이러한 기세로 1970년대에도 강력한 국가의 주도에 의한 말다듬기가 계속되었습니다. 1976년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외래어 순화가 강조되면서 ‘국어순화운동협의회’가 발족된 것입니다. 당시에는 외래의 것을 지양하고 우리말을 강조하는 것을 지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지속되었고, 국가의 강력한 주도에 의한 말다듬기는 1990년대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외래어를 다듬는 작업은 ‘국립국어연구원’(지금의 국립국어원)에서 2004년부터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 말터 누리집을 운영하면서 다시 한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듭니다. 국가 주도의 말다듬기 사업에서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자율적 방식의 말다듬기 사업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말터 누리집에서 어떤 말을 어떻게 다듬을지에 대해 국민들의 제안을 받고, 투표로 순화어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국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의 외래어 순화는 이전 시기에 비해 양적으로 활성화되었다고 보기도 어렵고, 순화한 용어가 정착된 정도 등을 고려할 때 질적으로 발달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말다듬기 사업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외래어 순화의 동력과 관련된 외적 환경의 변화와 관계가 있습니다.

우선 기존의 외래어 순화의 배경에는 ‘순수 우리말 쓰기’와 ‘쉬운 우리말 쓰기’가 섞여 있었는데 언어 순수주의를 배경으로 한 순수 우리말 쓰기를 강조하는 방향이 예전만큼 강력한 지지를 받지는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학술, 산업, 교육 등 전 분야의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데 매번 새롭고 의미 있는 용어를 만드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다듬어진 용어가 오히려 혼란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화 상황을 반영하여 가장 최근에는 ‘새말모임’을 통해 말다듬기의 새로운 시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존에 분기별로 개최되었던 말다듬기 위원회와는 달리 매주 개최하여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외래어 유입 초기에 확산될 가능성이 높은 용어들을 빠르게 포착하여 다듬기로 한 것입니다. 또 국민이 순화의 필요성이나 순화한 용어에 대한 공감의 정도가 어떠한지에 대한 국민 수용도 조사도 매주 실시하고 있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외래어를 너무 많이 사용하면 많은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워져 배제되고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이러한 배제는 직장과 학계의 다양성 부족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간결하고 사용하기 편리한 용어를 통해 평이한 언어로 정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때, 모든 사람이 보다 포용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할 수 있습니다. 말다듬기의 주체, 동력, 방식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않고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언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노력해 왔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주지연

주지연

영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panda07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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