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다녀가지 못하여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 있을까 하며 울고 가오. 어머님과 아기 잘 보살피며 있으시오. 올해에는 나오고자 하오.. 500여 년 전, 가족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부임한 조선의 군관 ‘나신걸(羅臣傑)’이 아내...
집에 다녀가지 못하여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 있을까 하며 울고 가오. 어머님과 아기 잘 보살피며 있으시오. 올해에는 나오고자 하오..
500여 년 전, 가족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부임한 조선의 군관 ‘나신걸(羅臣傑)’이 아내에게 이런저런 당부와 생각을 전하는 한글로 쓴 편지가 2012년에 한국의 대전에서 여러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 한글 편지는 1490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는 ‘훈민정음’이 1443년에 창제되고 1446년에 반포된 것을 고려하면 한글이 백성들 사이에서 빠르고 널리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현재까지 발견된 한글 편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자료이며, 당시 일상에서의 호칭이나 높임말 등 언어 생활을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한글 편지를 쓴 ‘나신걸’의 집안은 당시 지역에서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며 그 자신도 하급 무관으로서 근무하던 사람이었기에, 조선시대 한글이 여성이나 평민 중심의 글이었다고 인식되는 것과 달리, 한글이 남성들을 비롯하여 백성들의 실생활에 널리 쓰인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 일이었다.
전할 수 없는 조선시대의 그리움이 수백 년을 뛰어넘다
현재의 우리들에게 도착한 또 다른 한글 편지가 있다. 임진왜란 몇 년 전인 1586년 경,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뜬 남편에게 보낸 그리움의 글씨들이 있다.
한자보다 더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그 사람들의 마음들,
한글이 그것을 전하고 있다
수백 년을 지나 우리에게 도착하는 조선의 한글 편지들은 마치 며칠 전에 쓰인 것처럼 우리에게 읽히고 있다. 그것은 그 편지 속의 말투나 흐름이 우리 일상에서 건네는 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글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그대로 담아 종이에 적었고,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읽으며 조선시대의 말을 다시 재생시킨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시대에도 한글은 딱딱한 지시문서나 서류가 아닌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전하는데 더 큰 쓰임새가 있는 것 같다. 사람 마음의 모호함과 추상성을 잘 담아서 전할 수 있는 한글, 훈민정음.
세종의 한글이 1446년 이후 이 땅의 마음들을 시대를 넘어 연결하고 있다.
송두혁 / Joachim Song
한글닷컴(Haangle.com)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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