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무렵이다. 일등병이던 나는 대대 의무대에 가서 군의관에게 거수경례를 붙이고 이빨이 아파서 왔다는 용무를 ‘보고’했는데, 대위 계급장의 차가운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네가 짐승이야? 이빨이라고 하게?” 뻣뻣하게 언 일등병에게, 이빨은...
1982년 무렵이다. 일등병이던 나는 대대 의무대에 가서 군의관에게 거수경례를 붙이고 이빨이 아파서 왔다는 용무를 ‘보고’했는데, 대위 계급장의 차가운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네가 짐승이야? 이빨이라고 하게?”
뻣뻣하게 언 일등병에게, 이빨은 짐승의 이를 말하니, 사람의 이는 ‘치아’라고 해야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하신다. 그 뒤, 굳이 이빨 대신 치아를 쓰는 사람을 종종 만났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갸우뚱거렸다. 왜냐하면, 내가 자란 마을에는 누구나 이빨이라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 좀 더 큰 읍내를 나가서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서울의 치과에서도 이빨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국어 수업 중에 무심코 ‘이빨’이라는 말을 썼는데, 한 학생이 이런다.
“선생님, 이빨이 아니라 치아가 맞는다는데요?”
당연히 국어 교사인 나는 이빨이 옳은 말이라고 했더니, 학생은 즉석에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보여준다. 그걸 보고 나는 기함을 할 뻔했다. 노트북으로 확인하니, ‘네이버’ 창에 이렇게 떴다.
“이빨 : [명사] ‘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
믿을 수가 없어서 ‘다음’에서 검색하니 이렇게 떴다.
“이빨 : ‘이2’를 속되게 이르는 말.”
나와 우리 가족은 물론 우리 동네 사람들이 모두 ‘속되고, 낮은 말’을 쓰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뒤통수를 몽둥이로 한 대 맞은 듯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 사전이 틀린 거라고 말하는 나를 보고, 아이들은 와 하고 웃었다. 평소 농담을 잘하는 나의 말을 이번에는 실제 농담으로 알아들은 것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90세가 되신 우리 어머니 평강 채씨에게 이빨에 관해 여쭈었다. 그랬더니 우리 어머니 말씀.
“옛날에 어른한테는 이빨이란 말을 안 썼어. 치아에 뭐 묻었습니다, 이렇게 말했지.”
그제서야 내 머릿속이 환해졌다. 존대법의 혼란에서 생긴 문제였다.
우리말에는 존대법이 있다. 옛날 조선시대에 사농공상 네 계층이 있어서 생긴 현상이다. 하지만 이 치아와 이빨은 그것과도 조금 다르다. 이빨은 어른을 대하는 예법에서 온 현상이다. 우리가 어른들에게만 쓰는 말이 있다. 예컨대, ‘약주(술), 댁(집), 춘추, 연세(나이)’ 같은 말들이다. 어른들에게 술을 따라드릴 때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예절이다.
“약주 한 잔 받으십시오.” ‘약주’가 존댓말이라고 해서, ‘술’이 낮춤말은 아니다. ‘술’은 높낮이가 없는 말이다. 만약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데, “야, 약주 한 잔 해.”라고 한다면 이게 맞는 말인가? 당연히 틀린 말이다. 어법에 맞지 않는 오류이다.
이처럼 어른에게만 높여 쓰는 말이 있다. ‘이빨’과 ‘치아’도 그런 관계이다. 즉 ‘치아’를 어른에게 높여 쓰는 말이라고 해서, ‘이빨’이 낮춤말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르신, 치아에 고춧가루가 묻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만,
“얘야, 네 치아에 고춧가루 묻었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은 어법이라는 말이다.
이것을 착각한 어느 의대의 교수님이 강의 시간에 이빨과 치아를 구별하여 가르친 것이고, 그의 충실한 제자들은 현장에 나와서 그 틀린 정보를 부지런히 퍼뜨렸을 것이며, 그 효과를 나는 군대 의무대에서 맞닥뜨린 것이다.
‘이빨’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는 그 뿌리를 더듬어보면 알 수 있다.
‘이빨’은 ‘이+ㅅ+발’의 짜임을 보이는 낱말이다. 여기서 한눈에 띄는 말이 ‘발’이다. ‘발’은 ‘서릿발, 글발, 말발’ 같은 말에서 보듯이 줄줄이 들어선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집 입구에 드리운 ‘발’도 그 발이다. ‘글발’은 비읍 순경음화(ㅸ)를 거쳐서 ‘글월’로 자리 잡는데, 이것은 세로 글로 쓰던 옛날에 위에서 아래로 줄줄이 드리운 책의 글씨에서 생긴 말이다.
‘서릿발’은 땅이 얼 때 표면이 밀려 올라가면서 그 밑에 줄줄이 드리운 작은 얼음기둥을 말한다. 그 기둥은 홀로 있는 경우가 없다. 촘촘히 붙어서서 흙을 밀어올린다. 그래서 ‘서릿발’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빨’도 이 ‘서릿발’처럼 이들이 나란히 서서 생긴 이름이다.
영어에서는 단수와 복수를 구분한다. ‘tooth’와 ‘teeth’. ‘tooth’와 ‘teeth’ 사이에는 개수의 차이뿐이지, ‘이빨’처럼 나란히 선 모양을 가리키는 속뜻은 없다. 한자도 마찬가지이다. 한자에서는 ‘치아(齒牙)’라고 하는데, ‘齒’는 그냥 ‘이’이고, ‘牙’는 ‘어금니’를 뜻하는 말이다. 한자는 홀로 쓰이기를 싫어해서 가락을 맞추느라고 아무 말이나 하나 더 추가한 것이다. ‘송곳니, 대문니’가 아니고 ‘어금니’인 것은, 그것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의 말을 보아도 우리말 ‘이빨’처럼 그 배열 상태까지 속에 담은 말은 없다.
내가 보기에, 이빨이야말로 우리말의 조어법이 얼마나 교묘하고 또 아름다운지 그 본때를 보여주는 말이다. 이런 아름다운 우리말을 한자 말 ‘치아(齒牙)’로 대체해야 한다니, 백성들의 이 무지몽매와 그걸 또 민원이랍시고 받아주는 국립국어원의 망발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나는 우리나라에서 농투사니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 이렇게 써놓고 나니 또 ‘농투사니’는 ‘농투성이’의 충남 방언이라고 나오고, ‘농투성이’는 ‘농부’를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다음’ 사전이 설명한다. 도대체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정진명
시인 | onkagz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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